그래픽=내외경제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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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경제TV] 정동진 기자=국내 암호화폐 업계에서 역린(逆鱗), 금기(禁忌), 불문율(不文律) 등으로 점철되는 게 바로 상장 수수료다. 수수료를 지급했다는 측과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는 양측의 의견이 팽팽히 맞설 정도로 거래소와 프로젝트팀이 서로 이야기하지 않는 게 업계의 규칙이다.

간혹 사석에서 속칭 꾼이라 불리는 상장 액셀러레이터나 에이전트가 패키지 상장 가격을 이야기하지만, '카더라' 통신만 난무할 뿐 정작 누구도 사실확인이나 서로의 금기를 깨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년과 달리 특금법 시행 이후 암묵적으로 지키던 규칙을 깨고, 대립각을 세우는 프로젝트팀과 거래소를 향한 소송전이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투자자의 빗발치는 성화에 이기지 못해 마지못해 액션이라도 취해야 한다는 의견과 재단의 불미스러운 이슈를 덮기 위한 일종의 '마타도어'로 활용해 거래소를 공격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업비트 간판 / 사진=내외경제TV DB
업비트 간판 / 사진=내외경제TV DB

11일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업계에 따르면 업비트와 피카프로젝트(PICA), 빗썸과 드래곤베인(DVC)의 대립각은 소송전으로 이어졌지만, 이번 달에 일단락됐다.

업비트는 피카프로젝트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이 기각됐다는 짤막한 공식 입장으로 마무리했으며, 빗썸도 드래곤베인이 제기한 상장폐지 결정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면서 사실상 거래소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A 거래소 관계자는 "가재는 게 편이 될 수밖에 없는 게 재단과 싸울 이유가 없다. 오히려 공식적인 업무에서 모든 대화나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을 공개하는 게 과연 상식인지 묻고 싶다. 오히려 거래소의 갑질보다 프로젝트팀의 을질이 선을 넘은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B 프로젝트팀 이사는 "상장 전부터 거래소 관계자의 요청을 무시할 수 없다. 상장일에 맞춰 각종 프로모션과 로드맵, AMA 등을 준비할 정도로 철저하게 합의해서 모든 일정을 설계한다"며 "다만 거래소가 요청하더라도 재단은 부담을 느낀다. 하물며 식사나 단순한 미팅도 조심스럽다"고 전했다.

이번 업비트와 피카프로젝트의 소송전은 승소로 마무리되면서 일단락됐다.

업비트 관계자는 "업비트가 피카 거래 지원 종료를 결정한 것은 거래소로서 투자자를 보호해야 하는 의무에 따른 것이라는 업비트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피카프로젝트의 근거 없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재판부의 결정을 존중하며, 업비트는 앞으로도 고객의 자산과 투자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안전한 디지털 자산 거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오히려 업비트, 빗썸 등의 거래소는 승소라는 말을 아끼면서 프로젝트팀이 주장한 내용이 법원에서 기각됐고, 거래소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적합한 절차에 따른 결정'을 재판부가 인정했다는 것 외에는 말을 아끼고 있다.

빗썸 간판 / 사진=내외경제TV DB
빗썸 간판 / 사진=내외경제TV DB

앞서 언급한 상장 수수료만큼 금기 키워드는 상장이다. 대한민국은 현행법상 국내에서 ICO가 금지됐으며, 이는 현재도 유지된다. 하지만 거래소의 거래쌍을 형성해 첫 거래를 시작할 때 프로젝트팀이나 거래소는 당당하게 미디어나 관련 커뮤니티에 '상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프로젝트팀의 사업장 소재지가 싱가포르에 설립된 페이퍼 컴퍼니이며, 같은 사업장 소재지에 다른 프로젝트가 있어도 시세 조작이나 상장 비호 등의 부정적인 의미를 뜻하는 단어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사업장 소재지 국가와 '같은 주소 다른 프로젝트'에 대해 묻지 않는 게 불문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장 수수료는 거래소와 프로젝트팀의 의견이 다르다. 거래소 측은 "상장을 대가로 상장 비용을 일체 요구하지 않는다"는 공식 입장 외에는 상장 수수료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먼저 언급하는 측이 선동과 사기의 아이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팀은 거래소가 요구하는 일련의 비용(지갑 생성, 에어드랍 프로모션)을 상장 수수료로 인식한다. 이를 실생활에 적용하면 일종의 취업사기와 비슷한 맥락이다.

거래소의 심사를 통과해서 기밀 유지 계약서를 작성하고, 상장 일시 비공개 원칙으로 상호 협의해 확실한 상장일이 결정되면 거래소나 프로젝트팀이 공식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텔레그램, 디스코드, 미디엄 등에 공개한다. 경우에 따라 암호화폐 공시 플랫폼 '쟁글'에 제3자가 검증하는 방식을 사용하는 배경도 이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거래소보다 불리한 입장에서 상장된 거래소가 요구하는 사항에 대해 반기를 들 수 있는 프로젝트팀은 드물다. 자칫 거래소의 비위를 거스르면 일방적인 상장 폐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1월 폴로닉스(Poloniex)는 거래 중인 디지바이트(DGB)를 상장 폐지했다. 공식적인 사유는 유동적 부족에 따른 거래 종료지만, 디지바이트 관계자가 트위터에 폴로닉스를 디스하는 트윗을 올리자 거래소 측은 트위터로 상장 폐지 사실을 알린 바 있다.

2019년 12월 초 디지바이트(DGB) 창업자와 폴로닉스가 트위터에서 설전을 벌인 결과, 디지바이트는 일방적으로 상장 폐지됐다. / 이미지=트위터 갈무리
2019년 12월 초 디지바이트(DGB) 창업자와 폴로닉스가 트위터에서 설전을 벌인 결과, 디지바이트는 일방적으로 상장 폐지됐다. / 이미지=트위터 갈무리

업비트와 마찬가지로 빗썸은 2월과 6월, 두 번에 걸쳐 "빗썸은 공개된 상장심의 기준에 따라 상장을 진행해왔으며, 어떠한 경우에도 상장 결정을 위한 심사에 댓가성 금전 지급 여부가 판단 기준이 된 일이 없다"며 상장 수수료 논란에 선을 긋기도 했다.

특히 드래곤베인 소송전과 관련해 본지의 사실 확인 요청에 "어떠한 명목으로도 상장을 조건으로 하는 상장 수수료를 요구하지 않아왔으며 이와 관련된 억측이나 근거 없는 비방에 대해서는 향후에도 적극적으로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는 지난 6월에 밝힌 공식 입장이 전부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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