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경제TV 칼럼] 어느 날 한 사람이 숟가락으로 바닷물을 떠서 작은 웅덩이에 쏟기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과학자가 이것을 보고 무얼 하는지 물었습니다. 이 사람은 대답하기를 "수저로 바닷물을 전부 퍼내서 웅덩이로 옮기는 중이오"라고 했습니다.

이름난 과학자는 어이없어 웃으며 "무슨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시오"라고 했습니다.

이에 "나도 이 어이없는 일을 이제 그만둘 참이오. 헌데 당신이 하는 일은 내가 하는 일보다 더 어이가 없지 않소. 당신 머리는 이 웅덩이보다도 작고 이 세상은 바다에 비할 수 없이 광대한데 당신은 분별로 세상을 머릿속에 담으려 하고 있지 않소"라고 말했습니다.

말을 마친 현자는 통쾌하게 웃으며 자리를 떠났고 과학자는 무슨 소리인지 몰랐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는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는 말을 남긴 그리스의 헤라클레이토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가 새삼 떠오른 것은 얼마 전에 날짜 지난 의협신문 기사 하나를 우연히 보고 나서입니다.

이 기사의 내용은 과학중심의학연구원이라는 민간연구단체가 헌법재판소에 '한약처방을 과학적 검증 없이 하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보건에 관한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위헌청구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한의학이 아닌 서양의학을 전공한 의사의 입장이지만, 과학적 검증이라는 명목으로 수천 년 동안 처방되며 경험을 통해 효과가 검증되어온 한약의 처방을 막으려 하는 것은 작은 웅덩이에 바다를 옮길 수 있다는 착각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과 물질을 나누고 다시 물질을 분석해 이치를 찾으려는 과학의 방법에는 분명 한계가 있으며 현재의 과학이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현상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방법을 통해 검증된 것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서양의학에서 약효를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방법 중에 현재 가장 인정받는 방법은 이중맹검법입니다. 이중맹검법이란 특정한 약의 효과를 입증하기 위해서 이 약과 똑같은 모양의 가짜 약을 만들어서 같은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무작위로 두 집단으로 나눈 후에 약을 주는 의사와 환자가 모두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른 채로 약을 투약한 후에 약의 효과를 판단하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이 방법은 비용이 많이 필요해 한약처럼 특허권을 획득할 수 없는 약은 독점적으로 이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많은 비용을 투자해 효과를 실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행여 비용을 확보한다 해도, 확인하려는 한약과 모양, 맛, 향을 구분할 수 없는 가짜 약을 만들 수도 없습니다.

애초에 한약은 치료할 때 맛과 향과 같은 요소 또한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화학적 작용을 위주로 합성된 약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약을 합성 약과 같은 방법을 통해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독일에서는 전승되어온 생약이 임상에서 효과가 인정되면 현대화해서 폭넓게 사용하는 반면에 미국에서는 생약 성분의 작용기전이 밝혀져야 사용을 허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학이 모든 이치를 밝히지 못했다고 해서 사용을 못한다면 물의 화학적 성분을 모르면 물도 먹지 말아야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수소 두 개와 산소 한 개가 만나서 물이 된다는 것을 알기 전에도 물로 이루어진 몸으로 물을 마시며 지내왔으니 경험을 인정하는 독일 쪽의 태도가 훨씬 합리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또 현대과학에서 인정하는 이중맹검법과 같은 방법들이 과연 최선인가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면 그것을 증명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과학에서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것이 사실은 가정(假定)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의사이며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였던 윌리엄 제임스는 '심리학의 원리'라는 그의 저서에서 과학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과학은 다루기 힘든 분야가 되지 않기 위해서 임의로 선택한 문제들에만 매달리며 나머지 문제는 모두 무시한다. 따라서 모든 과학은 일부 자료를 전혀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그 자료의 의미와 진실을 검토하는 일을 철학의 다른 부분들에게로 넘긴다.

예를 들어, 모든 자연과학은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관념론에 닿는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물질의 세계가 지각하는 마음과 완전히 별도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역학(力學)은 물질이 질량을 갖고 있고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질량이니 힘이니 하는 용어들을 단지 현상적으로만 정의하며 조금 더 깊이 파고들 경우 야기될 어려움을 피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역학(力學)은 운동도 마음과 따로 존재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이 같은 가정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는데도 말이다. 물리학도 마찬가지로 원자와 원격(遠隔)작용 등을 무비판적으로 가정한다. 화학은 물리학의 모든 자료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생리학은 화학의 모든 자료들을 채택한다"

이제는 물리학에서도 관찰자(마음)를 배제하고는 물질을 정의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명을 다루는 의학에서 마음의 영향을 배제한 이중맹검법을 통해 얻은 결과만을 최상의 과학이라고 하며 실제 경험되는 현상들을 무시하려 한다면 독단적인 가정을 바탕으로 억지 주장을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칼 사이먼트(Carl Simonton)라는 치료방사선과 의사는 방사선으로 암 환자를 치료하던 중에 암의 진행 정도가 비슷한 환자들이 같은 치료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치료되고, 어떤 사람은 악화되는지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치료한 환자들을 관찰한 결과 암에 걸린 것을 알았을 때 긍정적으로 활기를 유지하는 사람과 의기소침해져서 좌절하는 사람 사이에 치료효과에 큰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방사선 치료 등에 병행해서 스스로의 삶을 제약하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돌아보도록 심리치료를 병행하여 치료 효과를 극적으로 향상시켰습니다. 암 환자들은 대개가 삶이 지루하다는 부정적 감정과 그래서 살고 싶지 않다는 심정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스스로의 반복된 생각이 믿음이 되어 자신을 어떠한 사람으로 정해놓고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슬픈 생각을 많이 한 사람은 날씨가 화창해도 기분이 울적하고 밝은 생각을 많이 한 사람은 흐린 날에도 기분이 화창합니다.

현재의 결과가 자신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을 인정한다면, 지금을 대하는 생각이 미래를 만드는 것 또한 인정할 수 있으니 이제 어디로 향할지 운전대를 손에 잡게 된 것입니다. 몸의 상태가 생각의 결과인 것처럼 마주하는 환경 또한 생각의 결과입니다.

도둑질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서로 편한 도둑끼리 친해지고 선한 사람은 선한 사람과 마음이 잘 통합니다. 그러니 지금 주위에 도둑질하는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다면 내 마음에 있는 도둑 심보를 돌아보고 무시할 수 있어야 도둑 소굴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마음 밖에 존재하는 물질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의 생각이 원인이자 결과라는 이치를 인정하게 되면 비로소 자유자재(自由自在 ; 스스로에서 비롯되어 스스로 존재한다)를 실감하게 되고 주인으로서 유쾌한 여행을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에 더해 불도(佛道)을 통해 전해지는 더욱 유쾌한 소식이 있습니다. 온갖 색(色)을 감각할 수 있는 눈은 색이 없고 투명하기 때문에 항상 색깔을 볼 수 있듯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온갖 생각을 할 수 있는 정신은 어떤 생각에도 물들지 않기 때문에 늘 다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생각은 순간순간 변화하니 무상(無常)하고 이 생각을 드러내는 정신(精神)은 허공과 같이 항상(恒常)하기 때문에 이 정신을 진정한 나라고 이름할 수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비유해 설명하시듯이 붕어빵이 아니라 붕어빵 만드는 기계가 나였으니 원래 속박 받을 수 없는 것을 단지 오해한 생각으로 속박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오해한들 붕어빵 기계가 붕어빵이 될 수는 없으니 본래 자유인 것입니다.

본래 자유로운 정신이 자연히 드러낸 현상을 또 다시 분별(分別)해서 증명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현자(賢者)의 눈에는 과학자의 헛된 노력이 우스워 보일 것입니다. 분별을 통해 증명하기에 앞서, 눈앞의 현상을 분별하고 있는 이 생각 자체가 무엇인가 돌아보고 왜 생각에 생각을 더해서 더 많은 생각을 통해야만 진실을 밝히 수 있다고 믿게 되었는지 돌아보는 것이 먼저일 것입니다.

에필로그

얼마 전 정토(도각사에서 키우는 삽살개)를 데리고 밤에 산책을 나간 일이 있습니다. 돌아올 때 길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뱀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꼼짝하지 않아서 차에 치여서 죽었나 싶었는데 어느 순간 움직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정토가 뱀에게 코를 대고 냄새를 맡으려 했습니다. 웅크렸던 뱀이 튀어 오르며 정토 코를 물어버렸고 정토는 펄쩍 뛰어 올랐습니다. 코에 핏방울이 맺혔습니다. 뱀을 확인해보니 살모사였습니다.

양방에서는 마땅히 쓸 약이 없어서 동의보감을 찾아보니 여러 가지 처방이 있는데 그중에 석웅황이라는 광물과 도꼬마리라는 식물이 주위에 있어서 석웅황을 개서 발라주고 도꼬마리를 찧어 즙을 내 먹였습니다.

원래 정토가 뭐든지 잘 먹기는 했지만, 도꼬마리 생즙을 낸 것이 놀랄 정도로 많은 양이었는데도 잘 받아먹었습니다. 개가 살모사에 물리면 부어서 오랫동안 먹지도 못하고 죽을 고비를 넘긴다는데 정토는 목이 붓기는 했지만 내내 잘 먹고 며칠 만에 건강하게 회복했습니다.

만약 도꼬마리가 살모사 물린데 효과가 있는지 과학적으로 검증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면 정토는 오래 고생해야했을 것입니다. 삽살개 정토 입장에서는 과학중심연구원에 있는 주인을 만나지 않아서 불행 중 다행입니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금적스님

연세대 의학과 졸업

이각스님을 은사로 출가

現 연세안심프롤로의원 원장

現 사단법인 보리수 이사

現 도각사 호법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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