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칼럼-손민두] 지나간 시간 속에 이토록 아름다운 이야기가 묻혀있다니
[여행 칼럼-손민두] 지나간 시간 속에 이토록 아름다운 이야기가 묻혀있다니
  • 손민두
  • 승인 2018.02.01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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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으로의 시간여행, 광주근대문화의 보고(寶庫)‘양림역사문화마을’

▲사진출처=광주시청

[내외경제TV 칼럼] 말기로 치닫는 500년 역사의 조선왕조는 그 기운을 다했다. 게다가 호시탐탐 조선을 노리는 열강 때문에 서울 하나도 간수하기 힘에 겨웠다. 사정이 이런 까닭에 서울에서 천리나 떨어진 광주에 개화된 문명을 전파하고 피폐된 민생을 보살필 주체는 아무도 없었다.

개화기라 일컫는 120년 전 세상은 서양이 동양을 지배하던 서세동점의 시대. 다행스럽게도 광주엔 종교적 열정이 넘치고 박애정신이 충만한 천사 같은 선교사들이 들어와 터를 잡았다. 그들에 의해 교회가 세워지고 병원, 학교 등이 차례로 설립되면서 근대 건축물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장소가 바로 양림동이다.

나라를 대신해 근대 문화 전파한 초기 선교사들
양림동에 정착한 초기 선교사들의 희생과 헌신은 실로 놀라웠다. 지금부터 114년 전 1904년 12월 25일, 양림교회 선교사 유진 벨(한국명 배유진), 클레멘트 C, 오웬(한국명 오지원)등은 성탄절 예배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복음 전파에 나선다. 이후 이들은 제중병원(현 기독병원)과 숭일학교(현 숭일 중고등학교), 수피아 여학교(현 수피아 여고)등을 세워 나라도 하지 못하던 교육과 의료사업을 이곳 양림동에서 펼쳤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3.1운동에 연루된 학생과 신자들을 돕고, 한센병 환자들을 따뜻하게 보살폈으며, 한국전쟁으로 발생한 고아와 빈민을 위해 봉사했다. 그들은 비록 파란 눈을 가진 이방인의 모습으로 이 땅에 들어왔지만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사랑과 봉사로 점철된 삶을 살다갔다.

그리고 죽은 후에도 양림동에 묻혔다. 양림동 언덕배기에 이들의 묘원이 있다. 묘원과 연결된 산책길엔 선교사들의 행적과 희생정신을 기릴 수 있도록 윌슨길을 비롯해 오웬길, 프레스톤길, 카딩톤길, 시핑길 등 여러 선교사들의 이름을 붙여 놓았다.

낙엽 쌓인 호젓한 길을 천천히 걸으며 기독교적 박애정신을 온몸으로 실천했던 이방인을 기억하는 건 예의바른 시민의 당연한 도리가 아닐까? 지나간 시간 속에 이토록 아름다운 이야기가 묻혀있다니, 묘원에 묻힌 선교사들이야말로 광주사람보다 더 광주사람처럼 살다간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품은 이야기도 아름다운 근대건축물
양림산 기슭 널찍한 터에 유럽의 별장 같은 건축미를 자랑하는 로버트 윌슨(한국명 우일선)선교사 사택은 많은 여행객들의 카메라에 담기는 인기 장소다. 이곳은 2004년 방영한 TV드라마 '구미호외전'에서 구미호로 분한 김태희가 사는 집으로 등장해 더 유명해졌다.

한데 겉모습만 보면 한국에 온 선교사들이 가난한 조선 사람들은 아랑곳 않고 고급주택을 짓고 호사를 누리며 살았을 것이란 오해를 가질 만하다. 하지만 이곳은 단순한 사택이 아니라 장애인과 고아를 위한 광주지역 최초의 고아원 사역을 시작한 장소다. 아름다운 외관만큼 품은 이야기도 아름다운 집인 것이다.

양림교회 안에 있는 오웬 기념각도 유서 깊고 예쁘기로는 윌슨 선교사 사택에 버금간다. 1914년 건립된 이 건물은 예배와 집회 장소, 문화 예술 발표의 장으로 활용돼 광주 신문화의 산실이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미군정 시절엔 사무실로도 사용되었으니, 역사적 무게감 또한 만만치 않다.

서양식 건물이라 낯설지만 왠지 정겨운 느낌을 주는 이유가 이 때문인지 모르겠다. 이밖에도 수피아여고 안에 있는 커티스 메모리얼 홀, 윈스브로우 홀 등 양림동에 산재한 서양식 근대 건축물들은 지난 100년의 역사와 문화가 담겨있는 타임캡슐 같은 보물이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건물들은 양림동을 지켜주는 수호신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시내의 허름한 집들이 재개발 광풍을 타고 모조리 철거돼 삭막한 아파트로 바뀌고 있는 요즘, 양림동이 아직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비결은 근대건축물 덕이다.

만약 이 유서 깊은 건물들이 없었다면 틀림없이 이문을 노리는 자본에 의해 동네가 사라지면서 이곳에 깃든 아름다운 이야기마저 말소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옛 건물은 우리의 망각을 막아주는 방파제 구실도 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양림동 기억 붙드는 화가 한희원
선교사들이 정착해 근대문화의 물꼬를 트자 다채로운 문화 예술인들이 양림동으로 몰려왔다. 중국의 3대 음악가로 불리는 정율성, 비운의 천재 음악가 정추, 조선 최초의 컬러 영화를 제작해 모스크바영화제 작품상을 받은 영화감독 정준채, 이 지역 문인들의 대부로 불리는 시인 김현승, 한국수채화의 선구자 배동신 화가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숨차다. 이들은 모두 양림동에서 태어나 자랐거나 양림동을 중심으로 활약 했다.

뛰어난 인물들이 근대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징소리'로 유명한 소설가 문순태, '젊은이들의 양지'와 '첫사랑' 등을 집필한 극작가 조소혜 등 최근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화 예술인들이 양림동과 관련돼 있다.

이곳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한 한희원 화가도 이들 계보를 잇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한희원 화백은 문화재로 지정된 '이장우가옥'과 '최승효가옥' 사이에 있는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미술관을 열었다. 그는 10살 무렵 양림동으로 이사와 20여 년간을 이곳에서 살아온 양림동 토박이로 양림동 역사의 산증인이다.

그가 그린 많은 그림이 1970~1980년대 양림마을의 향수와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희원 작가의 그림은 미술관 뿐 아니라 미술관과 가까운 팽귄마을에도 전시돼 있다. 그는 양림동이 과거 서정적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고 많은 예술가들을 배출한 곳인데도 불구하고 그 정신이 묻혀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워 이곳에 미술관을 열었다고 말한다.

양림동은 낡았다고 허물고 부수는 대신 오히려 그 낡음에 과거의 시간과 기억을 입혀 묻어두었던 아름다운 이야기를 다시 불러낸 곳이다. 아파트가 숲을 이룬 도시에서 희생과 봉사, 사랑과 나눔, 예술이 흐르던 시대의 정신과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곳, 이곳이 바로 양림역사문화마을이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손민두

코레일 KTX기장.

2004년 4월 1일 KTX개통 첫날 첫 KTX운행.

코레일 사보 '레일로 이어지는 행복플러스'편집기자. KTX매거진에 기차와 인문학이 만나는 칼럼 기차이야기 3년간 연재.

현재 '광주인'신문에 '기차별곡' 연재 중

손민두 nbntv@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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