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칼럼-금적스님] 인식에 따라 신체도 변한다
[의학 칼럼-금적스님] 인식에 따라 신체도 변한다
  • 금적스님
  • 승인 2018.01.30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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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행동도 판단에 따라 결과 달라

[내외경제TV 칼럼] '선(善)한 일이 흥미로울 수 있을까?'이 질문은 스무 살 무렵 읽은 책에 나왔던 말입니다. 어떤 심리학자가 쓴 책이었는데 저자나 책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고 유독 이 질문만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 책을 통해 질문에 대한 해답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당시 처한 상황에서 보지 못했던 방향을 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일반적으로 선하다고 하면 정해진 사회의 규범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자신을 절제하는 것을 떠올리게 됩니다.

사회의 질서와 조화를 위해 정해진 규칙이 있고 칭찬받는 덕목들이 있습니다. 이런 규범을 지키고 미덕을 행하는 것을 보통 선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따라야할 사회적 규범을 결정하는 것에서부터 미덕을 실천하는 데까지 실제로 보면 단순하지 않은 문제와 마주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약한 존재를 돕는 것을 선한 일이라고 한다면, 갈증으로 죽어가는 뱀에게 물을 주는 것도 선행(善行)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만약 이 뱀에 물려 사람이 죽었다면, 이 독사에게 물을 준 행동을 선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선한 일을 결정하고 실천하려 해도 갈등하게 됩니다. 행하기 힘든 일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선한 일이라고 한다면, 선한 일은 흥미로운 일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흔히 '최선(最善)을 다 한다'는 말은 열심히 노력한다는 말인데 정말 흥미로운 일이라면 열심히 노력할 필요가 없는 일입니다.

할 일이 정해져 있고 계속 노력해야 한다면 흥미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점점 힘이 들어집니다. 힘든 것을 선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 미리 어떤 것을 정해놓고 이것이 선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음에 서술하는 것은 정해진 일을 따라 노력하려다가 스스로 겪은 일입니다.

해야만 하는 일이 흥미를 없앤 사례 : 당위(當爲)로 인한 자발성 상실

중학생이 되어 초등학교 때 쓰던 일기를 보니 묶어 놓은 공책이 수십 권 가량이 무더기로 쌓여있었습니다. 무슨 내용으로 그 많은 공책을 채웠나하고 일기를 읽어 보다가 깜짝 놀라게 됐습니다.

일기는 시종일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했으니 앞으로 잘 하겠다는 내용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 뒤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반성만을 반복하는 글은 다시 쓰지 않기로 결심했지만, 그동안 노력한 결과로 얻어진 성과가 없어지진 않았는지 중학교 때 그리 반갑지 않은 별명이 하나 생겼습니다.

너무 의욕 없어 보인 까닭에 처음에는 할아버지라고 불리다가 나중에는 늙은이라고 불리게 됐습니다. 무슨 일이든 행한 대로 진행되는 법칙으로 인해 스무 살 때쯤에는 상황이 더 나빠졌습니다. 정해진 일을 위해 노력할 의욕은 전혀 없는데, 그렇다고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 일도 하나도 없어서 마치 깜깜한 벽과 마주한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암울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도서관 가서 여러 가지 책을 보던 중에 '선한 일이 흥미로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보게 되었는데, 맥락을 다 이해하지 못한 이 질문이 기억에 명확하게 남게 되었습니다. 선한 일이 무엇인지 몰라도 경험으로 볼 때,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일이라면 흥미로울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당위성(當爲性)을 정해 놓고 노력하다 보면 결국 계속 노력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미리 결정해 놓고 하는 노력이 흥미로울 수는 없습니다. 흥미로울 수 있으려면 억지로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어야합니다. 정해진 대로 노력하는 것이 선善이 아니라면 무엇을 선, 善이라고 하고 어찌해서 흥미로울 수 있을까요?

△자기 손을 보고 웃는 아이

아이는 자기 손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신기해서 웃습니다. 자기 손을 처음 움직여 본 아이에게 이 일은 당연한 일이 아니라 흥미로운 일입니다. 손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좋아하는 아이의 눈은 아무런 판단이 없어서 선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손을 움직여본 기억이 없기 때문에 아이에게 손을 움직이는 일은 선하고 흥미로운 일입니다. 기억이 많아져서 손을 움직이는 것이 당연해지면 이에 대한 흥미가 사라집니다. 그러니 어떤 일에 대해 흥미가 있으려면 그 일에 대한 기억이 없어야합니다.

기억이 없어서 미리 판단할 수 없는 일이 선한 일이고 흥미로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기억이 많아진 후에는 어떻게 선한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까요? 이미 쌓아온 기억을 가지고 지금을 미리 판단하지 않아야 하는데 어떻게 당연하게 여기던 기억을 지금 무시할 수 있을까요? 지난 기억들을 갖고 지금을 판단하는 것이 착각이고 힘든 일인 줄 알아야 기억을 무시할 수 있고, 흥미롭고 새로운 지금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선지식(善知識)과 함께 하고 있는 지금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수행자들에게 착각으로 쌓아온 기억을 무시할 수 있는 이치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불법(佛法)을 실제(實際) 그대로 증명해 주시고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시는 스승님과 함께할 수 있으니 한없이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선지식이 지금 함께 하더라도 스스로의 기억을 무시하지 못한다면 그만큼 선지식에서 멀어지게 되고 스스로를 힘들게 만들게 됩니다. 선지식의 향기가 널리 퍼져 기존의 기억을 무시하고 지금을 마주하기를 바라면서, 기억을 무시할 때 드러나는 긍정적 효과를 보여준 심리학 실험 하나를 소개합니다.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어떤 기억으로 일을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실험입니다.

▲사진출처=픽사베이

△호텔 청소부에 대한 심리학자의 실험

앨렌 랭어 (Ellen Langer) 라는 심리학자는 '마인드풀니스 (Mindfulness)'라는 책의 저자로 똑같은 일도 마음이 고정관념에 빠져 기계적으로 할 때와 고정관념을 무시하고 할 때, 경험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객실 청소부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실시합니다.

이 실험을 위해 84 명의 호텔 청소부를 모집했는데 이들은 하루에 평균 15개의 방을 청소했습니다. 이들은 여성의 건강과 행복을 증진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는 것으로 알고 이 실험에 참여했습니다. 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A그룹 44명에게는 그들이 매일 하고 있는 객실방 청소작업의 운동 효과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청소작업이 권장되는 운동량에 부합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운동이 건강을 위해 꼭 힘들게 노력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근육을 써서 움직이는 자체가 칼로리를 소모하는 운동이라는 사실을 알게 했습니다. (침대보 바꾸기 15분에 40칼로리 소모, 청소기 돌리기 15분에 50칼로리 소모, 화장실 청소 15분에 60칼로리 소모 등)

반면에 B 그룹 40 명에는 A그룹에 제공했던 정보를 전혀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실험 전후로 모두에게 설문조사를 하고 몇 가지 신체검사를 실시했습니다.

4주간의 시간이 지난 후 설문조사를 통해 본 결과 A 그룹에서는 일을 운동으로 인식하는 정도가 증가했습니다. 이들이 일을 하면서 운동을 하고 있다고 인식할 때 신체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실험자들의 몸무게, 체질량지수 (BMI), 체지방지수, 허리 – 엉덩이 비율, 혈압을 통해 신체에 미친 영향을 알아본 결과 모든 지표가 A 그룹에서만 긍정적인 변화했습니다. 평소와 똑같이 먹고 활동했는데도 불구하고 A그룹에서는 몸무게가 감소하고 최고혈압이 평균 10 정도가 감소했습니다.

같은 행동을 해도 어떤 판단으로 해석하는가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수행자로서 스스로 믿고 있던 기억을 무시할 수 있다면 지금이 늘 흥미로운 실험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금적스님

연세대 의학과 졸업

이각스님을 은사로 출가

現 연세안심프롤로의원 원장

現 사단법인 보리수 이사

現 도각사 호법부장

금적스님 nbntv@daum.net

기사 URL : http://www.nbntv.co.kr/news/articleView.html?idxno=74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