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경제TV 칼럼] 일본을 여행할 적이면 떠오르는 의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왜 일본 주택의 지붕 기와는 회색 일색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볼때 회색의 일본은 더욱 확연합니다. 그래서 나는 일본의 특징적인 색깔이 회색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사실 한국에서도 기와는 회색입니다. 모래와 시멘트라는 기와의 재료가 회색입니다. 지금은 그나마 기와지붕은 사라져가고, 형형색색의 기와모양의 함석지붕으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회색의 기와는 사찰 등 문화재적 건물에서나 쓰이고 있습니다.

더러 기와지붕의 주택도 있지만 붉고 푸른색 페인트를 칠해 원색의 지붕으로 만들지 회색으로 놔두지는 않습니다. 요즘은 색깔을 넣어서 구운 도자기 기와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기와 공장은 여전히 성업 중이고, 제품의 십중팔구는 회색계통이라는 점에서 일본은 한국과는 많이 다릅니다. 일본 주택들의 단정한 모습은 신사(神社)를 닮았습니다. 그래서 저마다 신사를 모시는 마음으로 집을 짓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흰색과 검은색이 합해져서 만들어지는 회색에 대해 한국화가 안진의 씨는 은은하고 검박한 색이라고 말합니다. 불교나 가톨릭 성직자들이 입는 옷의 색깔에 회색계통이 흔한 것은 회색의 고상함을 상징하는 예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회색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의미는 매우 부정적입니다. 흑백논리에 익숙한 이분법적인 사회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잿빛 하늘'은 매연에 찌든 도시의 하늘을, '회색의 도시'는 콘크리트 건물로 뒤덮인 비인간적인 도시를 의미합니다.

그중에도 회색에 대한 가장 무례한 대접은 '회색 인간'이 아닐까 합니다. 회색 인간은 표리부동해서 믿을 수 없는 이중인격자를 일컫습니다.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라는 일본인의 이중성이 회색의 일본에 중첩되어 일본에 대한 나의 생각은 다소 부정적으로 기울어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지난 11일부터 14일까지 관훈클럽의 문화탐방단의 일원으로 일본의 후쿠오카 현과 야마구찌 현 일대의 한일관계사 현장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색깔이 다양한 대도시의 높은 빌딩들에선 회색을 특징적인 색깔로 느끼기가 어렵지요.

이번 여행은 후쿠오카 시를 제외하곤 대부분 지방의 소도시를 지나는 여행이었습니다. 1~2층짜리 기와지붕의 단독주택들로 형성된 마을들은 하나같이 전형적인 일본의 색깔인 회색 마을이어서 나의 오래된 궁금증을 다시 한 번 자극했습니다.

여행 가이드에게 설명을 부탁하자 50대의 재일동포 여성 가이드는 뜻밖의 얘기를 했습니다. '메이와쿠(迷惑)'와 '와(和)'의 정신 즉,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과 남과 조화를 이루려는 마음씨 때문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일본의 가정교육 제 1조가 '남에게 폐(메이와쿠)를 끼치지 말라'라면 한국의 부모들은 '기죽지 말라'가 아니냐"면서 메이와쿠와 와를 쉽게 말하면 '튀지 말라'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와'의 정신은 역사의 조작설이 있는 고대 일본의 통일국가 야마토(大和)에서 기원했지만, 일본민족에게 '와'는 일본 음식이 와쇼쿠(和食), 옷이 와후쿠(和服)이듯이 생활의 전부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4개의 섬으로 구성된 일본의 단합에 대한 열망도 그 안에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회색 기와를 쓰는데 나만 붉은색 기와를 얹으면 남에게 폐가된다는 생각, 그랬다가는 '왕따'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시골로 갈수록 더욱 그러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그녀의 설명이 비록 체계적으로 들리진 않았으나 나는 오래된 궁금증 하나를 털어내는 기분이었습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그런 메이와쿠와 와는 동족끼리보다 이웃 나라들에게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닌가?"

메이와쿠와 야마토 정신은 체제순응적인 일본인 기질의 원형이고, 거기에서 군국주의가 자라나 전쟁의 동력으로 이용됐습니다. 아베정권이 일본을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려고 헌법 개정을 시도하고 있는 때여서 그 반문은 더욱 통렬하게 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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