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경제TV 칼럼] 5월 9일의 19대 대선에서 나는 기권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되었으면 하는 사람이 의중에 있긴 했으나 그가 실망스런 모습으로 대통령 선거가 시작되기도 전에 사퇴하는 모습을 보고 나니 사실 나의 좁은 식별안이 부끄러웠습니다.

사람은 치러봐야 안다고 하는데 치러보지도 않고 아는 체를 한 셈이니 자업자득입니다. 기성정치로는 변화를 기대할 수 없겠다는 생각 때문에 정치 밖의 인물에 걸었던 기대가 너무 컸던가 봅니다. 그 사건 이후 나는 대선 자체에 현저히 흥미를 잃었던 것입니다.

한국의 대선 이틀 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39세의 에마뉘엘 마크롱이 당선됐습니다. 그에게는 24세 연상인 아내 트로뉴가 있었습니다. 그의 젊음과 연상의 아내는 프랑스 대선결과를 대번에 세계적인 뉴스로 만들었습니다.

나도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습니다. 지구상의 현역 국가원수 중 최연소인 그의 나이와 엄마 같은 연상의 아내에 관대한 프랑스 유권자도 놀랍지만 그보다 더 놀란 것은 그의 정당 '앙마르슈(전진)'이었습니다. 불과 1년 전에 마크롱 대통령이 만든 신생정당인데 국회에 소속의원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의민주제를 운영하는 나라에서 의원 한 명도 없는 정당의 대표가 대통령이 된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언뜻 이해가 안 됐습니다. 프랑스 국민들은 도대체 마크롱의 무엇을 믿고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을까?

6월 11일부터 시작되는 총선에서 마크롱 당의 후보들을 대거 당선시켜 과반으로 만들어 줄 셈인가? 다른 정당들이 마크롱의 다리를 걸고넘어질 때 혁명이라도 일으킬 셈인가? 과연 프랑스는 패션의 나라, 대혁명의 나라답게 정치의 실험도 색깔이 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으로 인해 나는 기권에서 투표로 맘을 돌리게 됐습니다. 프랑스 유권자들이 변화에 대한 가능성 하나를 보고 마크롱을 선택했다면 나도 그런 가능성을 찾는 노력이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는 각성이 들었던 겁니다.

나는 부랴부랴 대통령 후보 가운데 마크롱을 닮은 사람이 누구일까, 나이가 가장 젊은 후보는 누구며, 의석 수가 가장 적은 정당의 후보는 누구인가를 알아보았습니다. 그 때 까지만도 안철수 후보와 유승민 후보 가운데 누가 어린지를 몰랐습니다.

심상정 후보의 정의당의 의석이 한 자리릿수인 것은 알았으나 안철수 후보의 국민의당과 유승민 후보의 바른정당 중에서 어느 당의 의원 수가 더 적은지도 정확히 몰랐습니다. 바른정당 의원들은 선거 막판 자유한국당으로 왔다갔다 하는 통에 더 헷갈렸습니다.

알고 보니 대선후보 중에 역시 마크롱을 닮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특히 그들 중에서 의석이 없이도 대통령에 출마할 배포를 지녔을 만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세를 과시하기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손을 잡을 패거리 정치인로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투표를 했습니다.

2012년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했을 때 의석도 없이 무슨 대통령을 하겠다는 거냐고 저마다 한마디씩 했습니다. 그 때 그는 기성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염증을 파고들었고, 그 전략이 적중해 한동안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달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세불리를 인정하고 후보를 사퇴했습니다. 나는 그 때 그가 무소속 후보로 끝까지 갔으면 그를 찍었을 것입니다. 이번에도 그는 무능하고 부패한 거대 정당에 대안이 되겠다며 제 3당 후보로 나섰으나 3위에 그쳤습니다. 마크롱은 '전진'했지만 그는 '철수'를 많이 했습니다. 한국의 정치토양은 프랑스보다 척박하기도 합니다.

프랑스에서 앙마르슈가 총선에서 과반을 얻을 수 있을지는 아직 모릅니다. 마크롱은 총선 과반 득표 전략으로 장관의 절반을 여성으로 임명한 데 이어 총선 후보자의 절반을 여성으로, 나머지 절반을 정치 신인으로 공천했습니다. 후보자의 연령은 평균 46세로 프랑스 의회 의원 평균연령 60세보다 14세나 젊습니다.

나는 다음 달 총선에서 앙마르슈가 의석의 과반확보에 실패하더라도 다른 정당과 연합하여 정부를 잘 꾸려갈 것으로 생각합니다. 의석 하나 없이 대통령에 도전한 그의 저력과 진가가 유감없이 발휘될 것이라고 봅니다.

한국의 정치야말로 협치가 긴요해졌습니다.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과반의석도 맥을 못 추는 것이 한국정치입니다. 여당인 민주당은 과반에 훨씬 못 미치는 원내 제1당입니다. 다른 정당과의 협력이 없이는 아무 일도 못합니다.

19대 문재인 대통령이 인사에서 코드와 탕평을 적절히 안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출발은 무난하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처음엔 인사를 넓게 하는 듯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코드인사로 좁혀지는 게 역대 정부의 모습이었습니다. 모든 개혁은 거기에서 중단되거나 역행하게 됩니다.

문 대통령은 갈수록 인사의 문호를 넓혀 코드인사라는 말을 안 듣는 대통령이기를 바랍니다. 야당의 좋은 정책을 여당의 정책으로 채택하고, 야당이 추천하는 인사를 기용하는 게 협치입니다. 개혁의 힘도 거기에서 나온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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