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경제TV 칼럼]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지난달 5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고에너지 물리학 콘퍼런스'에서 "지난해 발표했던 미지(未知)의 입자는 통계적인 잡음(noise)에 불과했다"며 '새 입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이 연구소는 작년 말 거대강입자가속기(LHC)의 초대형 검출기를 활용해 기존 물리학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입자(粒子)를 발견했다고 발표해 전 세계 과학계를 흥분시켰습니다.

과학계가 새 입자에 들떴던 것은 철(Fe) 원자 15개 정도 질량의 이 입자의 존재가 확인되면 현대 물리학을 전면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들어봐도 무슨 말인지 알 수도 없지만 과실을 인정하는 과학자의 표현이 상큼합니다. 이 연구를 진행한 제임스 비캠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교수는 "새로운 입자의 발견 사실은 검출 과정에서 잘못 해석한 잡음이었다"며 "사실이 아닌 것을 확인하고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이 바로 과학이 할 일"이라고 했습니다.

어린 목숨을 앗아 간 가습기 살균제 옥시 제조사나, 연비를 조작해 수많은 소비자를 속인 자동차 회사 폴크스바겐의 오리발 해명과 대처에 온 국민이 잔뜩 화가 난 시점이어서 그 말이 더욱 삽상합니다. 수많은 실험과 관찰을 통해 자연의 이치를 구명하는 학문이 과학입니다. 그 과실로 인류는 엄청난 편리함과 새로운 경험을 누리고 삽니다. 밤까지 활동시간을 늘린 전등, 지구촌을 일일 생활권으로 좁힌 항공기 같은 이기들입니다.

인간의 삶을 끝없이 풍요롭게 해 주고 호기심과 상상력을 북돋아 주는 과학은 그러나 수백 년 동안 종교와 대립해 왔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진화론입니다. 18~19세기 영국의 에라스무스(Erasmus Darwin 1731~1802, 찰스 다윈의 조부), 용불용설을 주창한 프랑스 박물학자 라마르크(Lamark 1744~1829), 진화론을 완성시킨 찰스 다윈(Chars Darwin 1809~1882) 등은 모든 생물은 진화하며, 인류도 신의 창조물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진화론자들은 용불용설처럼 기린의 목이 높은 나뭇가지의 잎을 따먹을 수 있도록 길어진 것은 진화의 결과라고 설명했습니다. 찰스 다윈은 더 많은 관찰을 통해 생물은 적자(適者)가 비적자보다 생존력과 번식력이 높아 생존경쟁(struggle for existence)에서 이긴 쪽으로 진화한다고 했습니다. 인간도 원숭이에서 진화한 동물이라고 확언했습니다. 그의 논리는 정치·경제·사회·문학·철학 등 여러 분야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반론도 많지만)

또 하나는 지동설입니다. 폴란드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에 이어 이탈리아 수학자·물리학자·천문학자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가 주장한 지동설은 천지를 창조했다는 전지전능한 하느님의 능력과 결합한 천동설을 정면 반박한 이론입니다. 특히 갈릴레이는 천체망원경을 손수 만들어 천문관측을 통해 달에 있는 산과 계곡, 목성의 4개 위성, 토성의 테, 태양 흑점 등을 발견한 관찰 과학자였습니다.

그러나 이들 과학자들은 수백 년 동안 절대 권력을 행사한 가톨릭교회의 탄압을 받았습니다. 창조주의 권위와 존엄에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파문, 출판물 금서, 가택 연금 등의 고통을 겪어야 햇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1992년에 교황청의 사과와 함께 복권되었고, 이단아 갈릴레이와 다윈도 21세기 들어서야 사면되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나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과학적 진리가 정착하려면 목숨을 건 탐구와 의지가 관건임을 말해 줍니다.

하지만 모든 과학 기술이 진실과 양심의 산물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노벨상이라는 과실(果實)을 남겼지만 가장 빠른 방법으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다이너마이트, 수십만 생령을 순식간에 앗아간 히로시마·나가사키의 원폭 임상실험, 지식과 정보의 영토를 한없이 넓혔지만 SNS폭력·저두족(低頭族)·스몸비(smombie: smartphone+zombie의 합성어)를 양산해 내는 인터넷기술들입니다. 그래서 과학은 도덕이 없다고 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학을 도외시하고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먹고 자고 입는 일상생활에서부터 보고 듣고 씹고 숨쉬는 모든 신체활동까지 몸에 밴 과학문명의 혜택을 원시상태로 돌이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사람이 정의구현의 법도(法道), 위민봉공의 치도(治道), 제중활인의 의도(醫道), 백년대계의 사도(師道)에 잡음을 많이 낼수록 과학의 영역에 밀려 '쓸모없는 인간'(useless human)으로 전락할지도 모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엔 잡소리 헛소리가 참 많습니다. 일일이 거론할 수도 없지만 금간 유성기판 소리처럼 반복되는 것이 '국회의원 특권 내려 놓겠다' '안보에 여야 없다' 같은 소리들입니다. 당연한 소리인데도 침 뱉고 눈 흘길 때만 지직거리면 악음(樂音) 아닌 소음으로 들릴 뿐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2,500년 전에 "허물이 있거든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過則勿憚改 과즉물개)"고 경고했습니다. 허물을 고치는 것은 사람이 할 일입니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내외경제TV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