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현지에서 본 2015년 한국과 일본을 잇는 사람들

▲동경 다이칸야마에 위치한 AICC( Asia Interest Culture Cneter)에서의 수업장면. (사진=최윤정 기자)

[도쿄=내외경제TV] 최윤정 기자 = 요시카와 씨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이 개최되기 이전부터 한국과 인연을 맺어 왔다. 우연한 기회에 한국여행을 가게 됐고, 한국친구를 사귀게 된 인연으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자연스럽게 일본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로 연결됐다. 30여 년 전의 한국을 한국인보다 많이 기억하고 있는 요시카와씨. 일본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먼저 한국어를 접하게 된 계기를 알고 싶습니다.

1980년대 중반, 이십대 초반이었을 때 우연히 지인들과 함께 한국에 여행을 가게 됐고, 그때 한국친구도 많이 생겼습니다. 특히 한국 거리의 건물이나 전체적인 분위기는 일본이랑 비슷한데 간판만 틀리고, 너무 익숙한듯 느껴지는 풍경인데 뭐라고 써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궁금하더라구요.
그 당시에는 제대로 된 메뉴가 없는 식당도 많아서 뭐라도 사서 먹으려면, 한글을 익힐 수 밖에 없었죠. 한마디로 두려운 반면 아주 재미있었어요. 이런 현상을 일본에서는 [한글요이(한글에 취한다는 의미)]라고 하는데 이런 불가사의한 감각에 빠져들어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일본인들도 많습니다.

지금 젊은이들은 모르겠지만 처음 한국에 자주 다닐때는 통금이 있던 시절이라, 통금시간이 되면 잘 모르는 사람집에 잠깐 쉬게 해 달라고 부탁해서 통금이 풀릴때까지 기다렸던 경험도 있어요. 모르는 사람을 집에 들여주는게 정말 고마웠습니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죠.

- 일본으로 돌아오신 후에도 계속 한국어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하시고 독학을 시작하신건가요?

그때 잠깐 여행을 갔었던걸 계기로 한국이 참 재미있는 나라구나, 그리고 무엇보다 친구가 생겼다는게 컸던것 같습니다. 그 친구랑 펜팔도 하고 시간이 나면 한국에 놀러가기도 했는데 말은 안통하지만, 일본어와 발음이 비슷한 단어가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어에 흥미를 느끼게 됬습니다. 처음에는 친구와도 주로 영어로 대화를 했는데 점차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라는 사실을 깨닫고 평범한 일반인들과 얘기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럼 내가 한국말을 배워야겠다라고 생각한 겁니다.

일본에 있는 지인이 한국유학생을 소개해줘서 한 달에 한 번 밤에 그룹렛슨을 했었는데, 저는 일이 바빠서 자주 참가하지 못했어요. 일년이 지났는데 저만 실력이 늘지 않아서 제 자신이 너무 한심스럽더라구요. 그래서 안되겠다 싶어서 한국유학을 결심했습니다. 당시 한국은 올림픽을 앞두고 있었는데 다른나라들도 마찬가지지만 올림픽같은 큰 국제경기를 치르고 나면 그 나라 자체가 많이 바뀌잖아요. 그래서 저는 올림픽 이전의 한국의 모습을 많이 알아놔야겠다고 생각했기때문에 더 열심히 공부한것 같습니다.

- 저는 서울 올림픽 때 아직 어릴때라서 자세히 기억하지 못하는데, 정말 소중한 경험을 가지고 계신것 같습니다.

9월부터 시작하는 연세어학당 코스에 들어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올림픽이 8월이었을거에요.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서울에 가서 올림픽도 보고 지인의 소개로 올림픽경기장에서 아르바이트도 했습니다. 덕분에 대부분의 경기를 현장에서 볼 수 있었어요. 정말 운이 좋았죠. 재미있었고 정말 감동적인 경험이었습니다.

- 올림픽 끝나고 학기가 시작되서 연세어학당에서 공부를 시작하셨는데요..

2년 3개월 정규코스를 마쳤습니다. 지각하지않고 성적이 좋으면 한학기 장학금을 주는데 그걸 한번 탔죠. 연속으로는 못받는다고 해서 그때부터는 좀 덜 열심히 했던것 같아요. 그때 연세어학당에는 재일교포들이 제일 많았고, 그 다음으로는 한국과 관련있는 사업을 하는 기업인이나 그 가족들이 다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재일교포분들을 포함해서 80%가 일본인, 10%는 미국인, 나머지는 다른나라 사람들이었는데 재미교포나 캐나다,유럽 교포들, 그리고 어렸을때 해외로 입양된 친구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모습도 인상깊었습니다.

- 2년 이상 연세어학당을 다니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하숙생활이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음식때문에 좀 힘들긴 했어요. 주인분들이 경상도 출신이어서 음식들이 저한테는 너무 맵고 짜더라구요. 그래도 김치랑 땅콩조림은 지금도 그립습니다. 가끔 나오는 호박부침이나 북어국, 계란찜도 맛있었구요.
그런데 한국이라고 하면 불고기를 많이 먹는다는 얘길 들었는데, 하숙집에서는 고기반찬을 안주더라구요. 그래서 처음에는 좀 섭섭했는데 나중에 보니 대부분의 가정들이 저희가 생각했던 것처럼 매일 불고기를 먹는건 아니라는 걸 알게됬습니다. 그리고 샤워를 할때는 따뜻한 물을 끓여서 써야 했습니다. 공중목욕탕 가는거는 재밌었지만 겨울에 따뜻한 물 끓여서 같이 나눠써야한다는게 좀 힘들었어요.

- 말씀을 들으면 2년 동안 고생을 많이 하신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 얘기했던 부분들은 좀 고생스러웠지만 재미있는 일이 더 많았습니다. 한국분들은 호기심이 많으셔서 저한테 말을 많이 걸어주셨어요. 그때는 짧은머리에 화장도 안하고 바지만 입고 다녔는데,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아주머니들이 이쁘게 생긴 아가씨가 화장도 좀 하고 좀 더 이쁘게 꾸미고 다니지 왜 그러고 다니느냐, 그러니까 남자친구가 없지..그런말 많이 들었어요.
일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런 말을 듣는게 싫지는 않았습니다. 그 당시 한국에서는 진한 화장에 한껏 부풀린 머리가 유행이었는데 그래서 아마 저같은 사람이 좀 특이하고 신기하게 보였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의외로 저 뿐아니라 일본사람을 보면 관심을 많이 가져주셨던것 같습니다.

- 일본에서와는 다른 환경에 힘든점도 있는 반면 재미있었다고 하셨는데, 그럼 생활 이외에 한국어는 어떤 점이 재미있으셨나요.

일본어와 어순도 비슷하고 발음도 비슷하고 무엇보다 생각의 사고가 비슷하다는점이 재밌었습니다. 예를들어 시간이 걸린다, 마음에 걸린다, 라던지 [걸린다] 라는 동사가 바로 직역해도 일본어와 상통하거든요.
그리고 놀랐던 점은 한국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자성어를 많이 쓴다는 점이었습니다. 한국어와 일본어 모두 한자문화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일본보다 훨씬 일상생활에서 사자성어를 자연스럽게 많이 사용한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했어요. 동분서주, 아비규환..등 이런말을 일본에서는 거의 대화에서는 안씁니다. 죽마고우라던지 이런 사자성어를 쓰면 잘난체하는걸로 보이거나 아니면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보여질 수 있거든요.

- 그럼 한국어의 어떤 부분이 공부하시면서 어려우셨나요?

역시 한자가 아닌 순수한 한국어 표현을 습득하는게 어려웠습니다. 예를 들어 입에 거미줄을 치다, 어깨가 으쓱거리다 같은…한자어는 상상이 되니까 금방 외울 수 있는데, 순수한 한국어 표현들은 이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에 정확한 뉘앙스를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세대에 따라서 쓰는 말들이 다르니까 그런 세대간 문화차이를 이해하면서 한국어를 활용하는게 어려웠습니다.

- 일본어를 공부하시던 입장에서 가르치는 입장이 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가 계속 한국어를 놓지 않고 통역이나 번역일을 꾸준히 하고 있었는데 그걸 본 한국친구가 좀 더 스킬을 배워서 한국어를 가르치면 어떻겠냐고 조언을 해줬습니다. 그걸 계기로 한국문화원에서 주최하는 한국어교사 육성 프로그램을 연수하고 또 우연히 기회가 되서 3년 전부터는 한국으로 치면 대학의 평생교육원같은 곳에서 강의를 시작하게 됬습니다.

▲요시카와 씨는 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어 강사로 활동시작, 현재 AICC, 평생교육원 등 다양한 곳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사진=최윤정 기자)

- 주로 어떤 분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계신가요?

아무래도 한류열풍으로 중장년 여성들이 많습니다. 80%정도는 드라마,케이팝 영향으로 한국어를 시작한 분들이고 나머지는 한국요리나 순수한 언어적인 관심으로 한국어공부를 시작하신 분들도 있어요. 그 중에는 젊은 친구들도 있는데 젊은친구들은 역시 K-POP팬들이 많습니다. 가르치다 보면 학생들이 재미를 붙이고 실력이 점점 느는것이 눈에 보이니까 가르치는 저도 정말 재미있습니다.

- 인상에 남는 학생이 있다면 어떤 분일까요.

정말 성실한 분이 계신데 교과서를 소개하면 아예 통채로 책 한권을 다 예습해서 오시고 한국어능력시험 5급을 준비하자고 하면 4급 시험까지 공부해서 오는 그런 분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한국어를 말하는 것을 더 재미있어 하는데 이분은 글쓰기를 더 좋아하셔서 일본한자를 한국어로 어떻게 읽는지 손수 책으로 만들어서 저한테 선물해 줬어요.

또 다른 한 분은 좀 다른 의미로 기억에 남는데 남편 분이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어를 배우는것을 별로 안좋아하셔서 전 이명박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고 한일관계가 냉각되자마자 내가 벌어온 돈으로 한국어공부하는건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답니다. 그래도 그분은 포기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서 아직도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 그런 분들을 보시면 정말 보람을 느끼실 것 같습니다.

물론이죠. 제 학생들이 "한국에 여행을 다녀왔는데 한국어가 예전보다 더 많이 들리고 한국사람들과 얘기도 하게 됐다, 또 가고 싶어요" 라고 들뜬 모습으로 말하는 걸 보면 정말 기쁩니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실 역사문제는 어려운 부분이라 꺼려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이런 분들이 조금이라도 늘고 선입견없이 한국문화를 받아들이려고 하는 분들이 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제가 조금이라마 저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 한류라는 이유 외에도 학생들중에 중장년 여성들이 많은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독신여성들뿐만 아니라 주부이거나 엄마이자, 부인이고, 일도하는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모입니다. 이런 다양한 역할을 해야하는 여성들에게는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고, 물론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도전의 의미도 있지만 공통의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소통을 한다는 의미도 큰 것 같습니다. 저는 수업에서 칭찬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어른이되거나 부모가 되면 칭찬을 해야 하는 상황는 많아지지만 정작 본인은 칭찬받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수업중에 서로 칭찬하고 칭찬 받으면서 때로는 남편 욕도 하고 농담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죠. 다들 제가 칭찬을 하면 더 열심히 하시고 긍정적인 호르몬도 많이 나와서 점점 활기차고 예뻐지시는것 같습니다.

- 한국어 학습에 있어서 한국인 강사와 일본인 강사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처음에는 내가 일본인인데 과연 한국어를 잘 가르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일본인 강사들의 단점은 역시 발음문제가 가장 크겠죠. 그리고 한국적인 고유의 말을 상황에 따른 적용시키는 부분에 있어서는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반면 네이티브 선생님들은 발음은 좋지만 일본인의 입장에서 문법을 알기쉽게 설명하는것은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어 학습을 할 때 논리적인 문법이해와 활용 네이티브 발음 이 두가지를 같이 병행하면 좋을것 같습니다.

그리고 발음에 대해서는 어렸을 때 배우지 않는 이상 완벽한 발음을 하는것은 힘든게 당연하니까 너무 컴플렉스로 생각하지 말고 편하게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5·60대분들이 발음에 너무 신경을 쓰다보면 말한마디 꺼내기가 힘듭니다.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너무 어려운 말을 쓰는것보다 바로 쓸 수 있는 실용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는게 좋지 않을까요?
처음엔 저도 내가 가르쳐서 발음이 안좋은건가 고민도 했지만 한국어를 배우는 목적은 얘기하고 싶고 소통하고 싶어서 배우는 거니까 즐기고 통하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한국어 강사로서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를 알려주세요.

재미있고 알기 쉬운 좋은 수업을 만들자가 제 수업의 모토입니다. 그리고 계속 연구해서 나만의 수업 메소드를 만들고 싶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교재개발에도 도전해보고 싶네요. 조금씩 준비중이지만 가면 갈수록 내가 올라가야 할 산이 높다는 걸 느낍니다.

- 마지막으로 요시카와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한글,한국어의 매력은 무엇입니까?

한국사람들의 '정'이 아닐까요. 언어적으로는 비슷하니까 쉽게 시작하고 재미를 느낄 수도 있지만 오랫도록 지속하게 만드는 원인은 아마도 한국인들의 정을 제가 느끼고 저도 한국에 정을 가졌기 때문에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국어의 표현 자체에도 정을 느끼는 표현이 많다고 느껴집니다. 제가 한국에 애인이 있는것도 아니고 한국에 친척이 있는 것도 아닌데 계속 한국어를 배우고 가르치고 있는걸 보면 '정'이 한국어와 저를 이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日 도쿄 특파원=최윤정 기자 (chois615@nb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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